
김형수 개인전
<지나가다 Pass>
——————
✔ 2024. 10. 9 (수) ~ 10. 15 (ghk)
✔ 3관
✔ AM 11:00 ~ PM19:00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10
✔무료관람
✔갤러리 문의 : 010 3393 8780
✔화요일은 설치 철수로 인해 전시관람이 불가합니다.
——————



——————
온 무게를 담아 걸어나가는 일 (평론)
작가의 작업실에는 마치 전시를 하는 듯 걸려있는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이젤도 여러 개여서 그 위엔 작품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작가는 아직까지도 작품이 완성되어 개운하고 후련한 기분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어느 것
도 완성이 된 것이 없다고도 말했다. 수정하고, 바꾸고, 걸러내고. 색상이 마음에 안 들면 이내 그라인더로 갈아내 버린다고 했다.
자신에게 엄격한 듯, 그리고 냉정한 듯 시멘트처럼 척척하고 단단한 작품의 이미지들은 금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누
가 봐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다분히 채도가 낮은 색상들과 무겁게 얹혀진 마띠에르들. 언뜻 보아도 그 인내와 노고가
가득 담긴 작품들은 단순히 평평한 눈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작품에 드러나는 일관성은 작가의 의도로 해석되기
쉽지만, 작가와 마주해 보면 그 모든 것은 고스란히 작가의 성정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아무 근심 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려 의문스럽다는 작가의 말은 너무 솔직하고 명료해서 거를 틈
이 없었다. 명징하게 말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이 꺼내려는 말에 있어 수도 없는 퇴고를 거쳐왔기에 가능한 일 일
것이다. 더단련하고, 거듭생각하고, 현실을 견지하는 작가의 시선에는 그 의지가 확고했다. 그것이 절대 아집이 될 수 없음은 작
가를 둘러싸고 있는 정제된 작품들이 대변하고 있다. 〈무게〉시리즈가 특히 그렇다. 작품에는 구체적인 형상도, 설명도 없다. 하지
만 켜켜이 쌓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나날이 생각한다. 생각하며 그린다. 그리면서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작품이, 의미
가, 생각이, 그릇인양 캔버스 안에 차곡차곡 담긴다. 계속해서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작가의 주변을 둘러싼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있다. 그렇게 작가는 마치 도(道)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의 태도를 작품 안에 담아낸다. 그 수행의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을 탐독하는 일이자 작품에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다.
작가는 그리는 삶에 대해 거동이 불편하기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일축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맥락이 담겨있었다.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그런 과정들은 우연으로 스치기보단 필연으로 작가의 삶에
뿌리내려온 지난한 여정이었다. 회화를 전공하고 미술학원에서 구상 회화를 가르친 지 수십여 년이 지나서, 작가로서 그림을 그
리기로 마음을 먹고 작업을 하며 십여 년이 또 지났다. 그리고 어언 인생의 육십갑자를 돌아 작가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데 여념
이 없다. 한 작품을 그려도 허투루 쉬이 그리지 않고 끝맺음을 모르는 작가의 집요함은 정제된 무언가를 갈망하는, 더 좋은 것과
더 나은 것을 위해 수없이 도구를 연마하는 도자장의 집념을 닮았다. 과연 작가는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그에 대해
쉽사리 설명하지 못하는 작가의 태도는 오히려 진솔하고 꾸밈이 없어 보였다.
〈빈속〉 시리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본 작품들은 무엇인가 외형을 둘러싼 꺼풀을 열면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그 고민
들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특유의 질감과 작품의 형태를 빌어 비어 있는 속을 캔버스 안에 표현해 내는데, 내보인 속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비어 있음이 있다. 애써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 참이나 진리는 없다. 그저 요란하지 않은 ‘안’이 있을 뿐이다.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 계속해서 궁금해하며 쫓아가는 것들은 다 그런 식이 아닐까. 작가가 표현해 낸 빈 속은 아물지 않는다. 그
벌어진 틈이 마치 갈라져 나오는 상처처럼 보여 괜히 눈이 시리고 머리가 아픈 것 같다. 눈으로 보고 만나야만 이해할 수 있는 그
런 시각적인 표현에 작가는 매진하고 있다. 혹은 비어 있는 속처럼 아직 몇 자 말로는 다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디다. 작가 본인이 작품의 형태에 완결을 두지 않고 매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띠에르를 쌓아 올
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야만 마른 물감 위에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에 둘러싸여 온종일 몰두하는 것은 오랜 시간 돌고 돌아온 생각들을 쏟아내기 위한 작가의 유일한 정공법
이다. 작업실은 자석인양 흩어져있는 수많은 상념들을 응집하며 또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작가는 그 중심에서, 몰려
오는 생각의 타래들을 수없이 묶고, 또 풀어서 묵묵히 캔버스에 담아낸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관찰한다. 자신의 둘레에 있는 것들에서부터 세상의 곳곳에 드러나는 일까지. 자신을 조이고 옥죄는 일들에
대해 직시하며 그 모습들을 작품에 반영했다. 이를테면 〈틈〉시리즈에서는 바래고 벗겨져 떨어져 나가는 것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단단하고 견고 했던 것들도 계속해서 산화되고 스러져서 끝내 소멸하게 되는. 작가는 그 과정의 단면들을 작품 안에 결집해 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상황과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쪽을 택한다. 이는 여과 없이 몰려오는 수많
은 상념들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음을 증명한다. 〈틀〉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반복되는 창의모습들도 마찬가지다. 건물처럼 규격화
된 삶에서 고착화되는 마음과 신체에 대해서. 작가는 계속해서 자신을 둘러싸는 생각들을 눈으로, 물감과 붓으로 옮겨 내보인다.
나는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굴레〉시리즈가 종교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물 었고 그는 그에 대해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했다.
일전에 전시장 한가운데 작품을 매달아 놨더니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가더라는 사연들을 얘기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녹슬고
갈라진, 가시철사가 성글어있는 원형리스는 예수의 가시 면류관을 닮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 불안한 미래와 현재, 과거사이
에 놓인 삶의 유한함과 그 안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제약들에 대한 생각들을 보여주고 자작 가는 실제 철사를 구부려 캔버스 위에
박아 넣었다. 돌가루와 젯소로 쌓인 질감들은 구부러진 철사가 더욱 앙상하고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철사로 만든 리스 외에도 팬
던트등 빛이 바라고 낡은 모습으로 묵직하게 캔버스 위에 박제되어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업으로 수십 년을 지내 온 후, 작가로서는 뒤늦게 붓을 다시 잡았다. 그림을 그린다기 보단 만들기에 가
까운 듯 다양한 재료를 구사하기 위해 부산을 떨다 보면 여러 번 의자에서 넘어지기 일쑤라고 했다. 마치 고행의 길을 걷는 것처
럼, 작가는 매일같이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자신과 겨루고 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생각의 응어리들은 더욱 정제된 형태로, 작가
의 진득한 성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에게 그리는 일이란 우회하지 않고 천천히, 온무게를 담아 걸어 나가는 일인 것이다.
다시 〈무게〉시리즈에서, 한 작품에는 ’60’이라는 부제가 있다. 작가가 공유해 준 포트폴리오에는 작품에 대해 부연한 말이 담겨져
있었다. 그 말에는 작가로서의 지난 한과정과, 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또렷이 읽을 수 있었다.
〈60세가 넘은 시점에서 시간의 무게를 재보았다.
지난 시간보다 남은시간이 적다. 좀 불안하고 슬픈데
작품을 그리고 나니, 왠지 평온한 느낌이 든다.〉
정효섭 아인아 아카이브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김형수 개인전
<지나가다 Pass>
——————
✔ 2024. 10. 9 (수) ~ 10. 15 (ghk)
✔ 3관
✔ AM 11:00 ~ PM19:00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10
✔무료관람
✔갤러리 문의 : 010 3393 8780
✔화요일은 설치 철수로 인해 전시관람이 불가합니다.
——————
——————
온 무게를 담아 걸어나가는 일 (평론)
작가의 작업실에는 마치 전시를 하는 듯 걸려있는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이젤도 여러 개여서 그 위엔 작품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작가는 아직까지도 작품이 완성되어 개운하고 후련한 기분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어느 것
도 완성이 된 것이 없다고도 말했다. 수정하고, 바꾸고, 걸러내고. 색상이 마음에 안 들면 이내 그라인더로 갈아내 버린다고 했다.
자신에게 엄격한 듯, 그리고 냉정한 듯 시멘트처럼 척척하고 단단한 작품의 이미지들은 금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누
가 봐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다분히 채도가 낮은 색상들과 무겁게 얹혀진 마띠에르들. 언뜻 보아도 그 인내와 노고가
가득 담긴 작품들은 단순히 평평한 눈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작품에 드러나는 일관성은 작가의 의도로 해석되기
쉽지만, 작가와 마주해 보면 그 모든 것은 고스란히 작가의 성정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아무 근심 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려 의문스럽다는 작가의 말은 너무 솔직하고 명료해서 거를 틈
이 없었다. 명징하게 말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이 꺼내려는 말에 있어 수도 없는 퇴고를 거쳐왔기에 가능한 일 일
것이다. 더단련하고, 거듭생각하고, 현실을 견지하는 작가의 시선에는 그 의지가 확고했다. 그것이 절대 아집이 될 수 없음은 작
가를 둘러싸고 있는 정제된 작품들이 대변하고 있다. 〈무게〉시리즈가 특히 그렇다. 작품에는 구체적인 형상도, 설명도 없다. 하지
만 켜켜이 쌓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나날이 생각한다. 생각하며 그린다. 그리면서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작품이, 의미
가, 생각이, 그릇인양 캔버스 안에 차곡차곡 담긴다. 계속해서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작가의 주변을 둘러싼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있다. 그렇게 작가는 마치 도(道)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의 태도를 작품 안에 담아낸다. 그 수행의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을 탐독하는 일이자 작품에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다.
작가는 그리는 삶에 대해 거동이 불편하기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일축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맥락이 담겨있었다.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그런 과정들은 우연으로 스치기보단 필연으로 작가의 삶에
뿌리내려온 지난한 여정이었다. 회화를 전공하고 미술학원에서 구상 회화를 가르친 지 수십여 년이 지나서, 작가로서 그림을 그
리기로 마음을 먹고 작업을 하며 십여 년이 또 지났다. 그리고 어언 인생의 육십갑자를 돌아 작가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데 여념
이 없다. 한 작품을 그려도 허투루 쉬이 그리지 않고 끝맺음을 모르는 작가의 집요함은 정제된 무언가를 갈망하는, 더 좋은 것과
더 나은 것을 위해 수없이 도구를 연마하는 도자장의 집념을 닮았다. 과연 작가는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그에 대해
쉽사리 설명하지 못하는 작가의 태도는 오히려 진솔하고 꾸밈이 없어 보였다.
〈빈속〉 시리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본 작품들은 무엇인가 외형을 둘러싼 꺼풀을 열면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그 고민
들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특유의 질감과 작품의 형태를 빌어 비어 있는 속을 캔버스 안에 표현해 내는데, 내보인 속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비어 있음이 있다. 애써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 참이나 진리는 없다. 그저 요란하지 않은 ‘안’이 있을 뿐이다.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 계속해서 궁금해하며 쫓아가는 것들은 다 그런 식이 아닐까. 작가가 표현해 낸 빈 속은 아물지 않는다. 그
벌어진 틈이 마치 갈라져 나오는 상처처럼 보여 괜히 눈이 시리고 머리가 아픈 것 같다. 눈으로 보고 만나야만 이해할 수 있는 그
런 시각적인 표현에 작가는 매진하고 있다. 혹은 비어 있는 속처럼 아직 몇 자 말로는 다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디다. 작가 본인이 작품의 형태에 완결을 두지 않고 매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띠에르를 쌓아 올
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야만 마른 물감 위에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에 둘러싸여 온종일 몰두하는 것은 오랜 시간 돌고 돌아온 생각들을 쏟아내기 위한 작가의 유일한 정공법
이다. 작업실은 자석인양 흩어져있는 수많은 상념들을 응집하며 또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작가는 그 중심에서, 몰려
오는 생각의 타래들을 수없이 묶고, 또 풀어서 묵묵히 캔버스에 담아낸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관찰한다. 자신의 둘레에 있는 것들에서부터 세상의 곳곳에 드러나는 일까지. 자신을 조이고 옥죄는 일들에
대해 직시하며 그 모습들을 작품에 반영했다. 이를테면 〈틈〉시리즈에서는 바래고 벗겨져 떨어져 나가는 것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단단하고 견고 했던 것들도 계속해서 산화되고 스러져서 끝내 소멸하게 되는. 작가는 그 과정의 단면들을 작품 안에 결집해 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상황과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쪽을 택한다. 이는 여과 없이 몰려오는 수많
은 상념들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음을 증명한다. 〈틀〉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반복되는 창의모습들도 마찬가지다. 건물처럼 규격화
된 삶에서 고착화되는 마음과 신체에 대해서. 작가는 계속해서 자신을 둘러싸는 생각들을 눈으로, 물감과 붓으로 옮겨 내보인다.
나는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굴레〉시리즈가 종교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물 었고 그는 그에 대해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했다.
일전에 전시장 한가운데 작품을 매달아 놨더니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가더라는 사연들을 얘기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녹슬고
갈라진, 가시철사가 성글어있는 원형리스는 예수의 가시 면류관을 닮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 불안한 미래와 현재, 과거사이
에 놓인 삶의 유한함과 그 안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제약들에 대한 생각들을 보여주고 자작 가는 실제 철사를 구부려 캔버스 위에
박아 넣었다. 돌가루와 젯소로 쌓인 질감들은 구부러진 철사가 더욱 앙상하고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철사로 만든 리스 외에도 팬
던트등 빛이 바라고 낡은 모습으로 묵직하게 캔버스 위에 박제되어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업으로 수십 년을 지내 온 후, 작가로서는 뒤늦게 붓을 다시 잡았다. 그림을 그린다기 보단 만들기에 가
까운 듯 다양한 재료를 구사하기 위해 부산을 떨다 보면 여러 번 의자에서 넘어지기 일쑤라고 했다. 마치 고행의 길을 걷는 것처
럼, 작가는 매일같이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자신과 겨루고 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생각의 응어리들은 더욱 정제된 형태로, 작가
의 진득한 성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에게 그리는 일이란 우회하지 않고 천천히, 온무게를 담아 걸어 나가는 일인 것이다.
다시 〈무게〉시리즈에서, 한 작품에는 ’60’이라는 부제가 있다. 작가가 공유해 준 포트폴리오에는 작품에 대해 부연한 말이 담겨져
있었다. 그 말에는 작가로서의 지난 한과정과, 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또렷이 읽을 수 있었다.
〈60세가 넘은 시점에서 시간의 무게를 재보았다.
지난 시간보다 남은시간이 적다. 좀 불안하고 슬픈데
작품을 그리고 나니, 왠지 평온한 느낌이 든다.〉
정효섭 아인아 아카이브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