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찻사발에 담茶_조선의 사발, 500년의 역사
구례 정해미술관 + 갤러리인사1010
목조형_이성철
[조선 찻사발에 담茶_조선의 사발, 500년의 역사] 2022.8,3-8,23
@kintsugi_korea_jh
@lee_seong_chul
"찻 사발이 바뀌면 차 맛이 정말 달라지나요?”
보고, 만지는 것은 분명 달라서 볼 때 느껴지는 게 있지만, 질감으로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조선 찻사발 전시는 단순히 보는데 머무르는 전시가 아니라, 만지고 마실 수 있는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마신다’는 말에 담긴 오감이 살아난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조선조를 중심으로 고려말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 속 보물 같은 귀한 찻사발로 차를 마시면서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찻사발의 의미
찻사발을 포함해서 먹고 마시기 위해 만드는 그릇은 동서양에 다 있지만, 동양에서 내력이 달라진 연원은 이 그릇들이 ‘예(禮)’와 관련하여 쓰였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예’의 본질은 결국 전통과 제례와 연관된다.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무명의 장인일지라도 그 만듦새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던 것은 진심과 정성을 담은 상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차를 마시는 것을 다례(茶禮)라고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직접 그릇을 만들지 않지만, 그 마음은 차와 찻사발에 담겨있으므로 차와 찻사발은 멀리 떨어져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과 찻사발을 빚는 도공의 마음이 하나일 때 작품은 탄생하는 법이다.

조선 찻사발, 500년의 보물
우리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찌그러지거나 얼룩덜룩한, 다소 ‘불량한 외관’을 가진 일부의 찻그릇을 보면 ‘자연스럽다’라고 말한다. 그 찻그릇으로 차를 마실 때, 차와 공간, 시간과 풍경이 한없이 어울린다. 인간과 자연과 일체가 된 모습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도자 미학은 인위적인 손길을 극도로 제한하여 사물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완성할 때 그 속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드러난다. 조선의 찻사발은 세계 최고라 평가되곤 한다. 우리의 다완(茶碗)을 일본은 국보로 지정해 소중하게 보관하여 다룬다. ‘갤러리인사1010’의 두 번째 전시인 <조선 찻사발에 담茶_조선의 사발, 500년의 역사>를 개최하며 세기의 걸작, 조선 찻사발을 구례 ‘정해미술관’과 함께 소개한다. 일본에서 국보와 문화재로 지정된 이도다완과 호조코히키 류 30여 점을 포함해, 전 세계 유일한 형태의 다완인 덤벙무늬발(호조코히키), 조선도공이 히라도에 잡혀가 만든 토토야차완, 임진왜란 시기에 조선 도공이 만든 킨카이 네꼬가키 등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제작된 희소가치가 높은 다완 약 90여 점을 어렵게 한데 모았다. 이 전시를 위해 ‘정해미술관’ 지헌영 관장은 전국을 돌며 조선 찻사발 소장자들로부터 다완을 제공 받았다. 이 중에는 구하고 싶어도 살 수 없던 작품이 일부 판매되니 컬렉터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당대 최고의 찻사발을 만드는 작가들인 문경요 천한봉, 웅천요 최웅택, 산청요 민영기, 도곡요 정점교, 러브리(미국) 등의 작품이 전시에 더해져 찻사발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화가이고 목수인 이성철 작가의 사방탁자와 서탁과 책상 등의 목조형 작품이 옛 기물과 호흡을 함께 하게 된다.

세계가 매료된 조선의 다완
끌림과 경이로 가득한 조선 찻사발의 모든 것
교토에 있는 대덕사(大德寺,다이토쿠지)에 고이 모셔진 소박한 그릇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어느 학자는 이 그릇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조선 도공의 손을 빌려 만들었다고 말한다. 일본 다도의 대성자 센노리큐(千利休)는 조선의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칭해 ‘아무것도 없다. 자신마저 비워낸 그릇이다’라고 했다. 조선 찻사발의 미학은 이처럼 비정형성에 있으며 그 투박한 아름다움의 정신은 보편적인 공감을 통해 일본의 와비사비(わびさび)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일본을 비롯한 세계적으로 귀한 대접을 받아왔던 조선의 이도다완은 ‘막사발’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정작 국내에서는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보존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귀하게 여기지 않기에, 이제는 희귀한 그릇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어떤 선언을 통해 이 그릇의 가치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함이 아니다. 하나하나의 그릇을 보고, 또 차를 마시며 찻사발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대를 거슬러 장인의 숨결을 느끼고 변해가는 과정을 가슴속에 새길 수 있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



조선 찻사발에 담茶_조선의 사발, 500년의 역사
구례 정해미술관 + 갤러리인사1010
목조형_이성철
[조선 찻사발에 담茶_조선의 사발, 500년의 역사] 2022.8,3-8,23
@kintsugi_korea_jh
@lee_seong_chul
"찻 사발이 바뀌면 차 맛이 정말 달라지나요?”
보고, 만지는 것은 분명 달라서 볼 때 느껴지는 게 있지만, 질감으로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조선 찻사발 전시는 단순히 보는데 머무르는 전시가 아니라, 만지고 마실 수 있는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마신다’는 말에 담긴 오감이 살아난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조선조를 중심으로 고려말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 속 보물 같은 귀한 찻사발로 차를 마시면서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찻사발의 의미
찻사발을 포함해서 먹고 마시기 위해 만드는 그릇은 동서양에 다 있지만, 동양에서 내력이 달라진 연원은 이 그릇들이 ‘예(禮)’와 관련하여 쓰였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예’의 본질은 결국 전통과 제례와 연관된다.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무명의 장인일지라도 그 만듦새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던 것은 진심과 정성을 담은 상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차를 마시는 것을 다례(茶禮)라고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직접 그릇을 만들지 않지만, 그 마음은 차와 찻사발에 담겨있으므로 차와 찻사발은 멀리 떨어져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과 찻사발을 빚는 도공의 마음이 하나일 때 작품은 탄생하는 법이다.
조선 찻사발, 500년의 보물
우리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찌그러지거나 얼룩덜룩한, 다소 ‘불량한 외관’을 가진 일부의 찻그릇을 보면 ‘자연스럽다’라고 말한다. 그 찻그릇으로 차를 마실 때, 차와 공간, 시간과 풍경이 한없이 어울린다. 인간과 자연과 일체가 된 모습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도자 미학은 인위적인 손길을 극도로 제한하여 사물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완성할 때 그 속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드러난다. 조선의 찻사발은 세계 최고라 평가되곤 한다. 우리의 다완(茶碗)을 일본은 국보로 지정해 소중하게 보관하여 다룬다. ‘갤러리인사1010’의 두 번째 전시인 <조선 찻사발에 담茶_조선의 사발, 500년의 역사>를 개최하며 세기의 걸작, 조선 찻사발을 구례 ‘정해미술관’과 함께 소개한다. 일본에서 국보와 문화재로 지정된 이도다완과 호조코히키 류 30여 점을 포함해, 전 세계 유일한 형태의 다완인 덤벙무늬발(호조코히키), 조선도공이 히라도에 잡혀가 만든 토토야차완, 임진왜란 시기에 조선 도공이 만든 킨카이 네꼬가키 등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제작된 희소가치가 높은 다완 약 90여 점을 어렵게 한데 모았다. 이 전시를 위해 ‘정해미술관’ 지헌영 관장은 전국을 돌며 조선 찻사발 소장자들로부터 다완을 제공 받았다. 이 중에는 구하고 싶어도 살 수 없던 작품이 일부 판매되니 컬렉터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당대 최고의 찻사발을 만드는 작가들인 문경요 천한봉, 웅천요 최웅택, 산청요 민영기, 도곡요 정점교, 러브리(미국) 등의 작품이 전시에 더해져 찻사발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화가이고 목수인 이성철 작가의 사방탁자와 서탁과 책상 등의 목조형 작품이 옛 기물과 호흡을 함께 하게 된다.
세계가 매료된 조선의 다완
끌림과 경이로 가득한 조선 찻사발의 모든 것
교토에 있는 대덕사(大德寺,다이토쿠지)에 고이 모셔진 소박한 그릇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어느 학자는 이 그릇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조선 도공의 손을 빌려 만들었다고 말한다. 일본 다도의 대성자 센노리큐(千利休)는 조선의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칭해 ‘아무것도 없다. 자신마저 비워낸 그릇이다’라고 했다. 조선 찻사발의 미학은 이처럼 비정형성에 있으며 그 투박한 아름다움의 정신은 보편적인 공감을 통해 일본의 와비사비(わびさび)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일본을 비롯한 세계적으로 귀한 대접을 받아왔던 조선의 이도다완은 ‘막사발’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정작 국내에서는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보존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귀하게 여기지 않기에, 이제는 희귀한 그릇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어떤 선언을 통해 이 그릇의 가치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함이 아니다. 하나하나의 그릇을 보고, 또 차를 마시며 찻사발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대를 거슬러 장인의 숨결을 느끼고 변해가는 과정을 가슴속에 새길 수 있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